2015년 노벨 물리학상은 '뉴트리노 진동'을 관측한 도쿄대학 우주선연구소 소장인 카지타 다카아키 씨와 캐나다의 Queen's University, Director of Sudbury Neutrino Observatory Institute(SNO)의 Arthur Bruce McDonald 씨가 수상했다.

중성미자 관련으로 노벨 물리학상은 이번이 세 번째다. 1번째는 1995년 원자로에서 방출되는 중성미자를 실험적으로 검출한 연구자가 수상. 2번째는 2002년 태양과 초신성 1987A에서 방출된 중성미자의 관측에 성공한 연구자가 수상했다.

그럼 이 중성미자는 도대체 무엇인가. 1990년 당시 도쿄대학 우주선연구소 교수였던 토츠카 요지 씨는 '전하가 없는 전자와 같은 것'이라고 강연회에서 설명했다. 질량은 없거나 있다고 해도 매우 작아 1990년 시점에서는 전자 중성미자는 16전자볼트(eV) 이하(1eV는 1.78×10 -36kg)인 것밖에 알지 못했다.

약간 전문적인 설명에서는 전자와 전자 중성미자(νe)의 차이는 '약 아이소스핀'이라는 양자수의 차이로 이해되고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의 차이는 아이소스핀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질량의 경우 양성자와 중성자는 거의 같지만 전자와 νe는 크게 다르다. 현시점에서도 중성미자의 질량은 명확하지 않고 νe의 경우에 제로 이상, 2.5eV 이하로 밖에 알 수 없지만 전자의 질량은 0.51MeV로 νe의 25만 배 이상 크다.

중성미자는 태양에서 대량으로 방출되어 지금도 우리 몸을 계속 관통하고 있다. 지구상에는 초당 1cm^2당 680억 개의 중성미자가 쏟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몸에 부정적인 영향은 없다. 거의 물질과 충돌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유령같은 존재로 관측이 매우 어렵고 활용 방법도 거의 없다. 그런데 이 무해한 입자 없이는 현대 물리학이 성립하지 않은 입자이기도 하다. 중성미자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물리학은 20세기 초의 혼란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물리학이란 무엇인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굳이 난폭하게 말하면 물리학이란 에너지 보존 법칙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에너지 보존 법칙이란 에너지는 세상에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하고 언뜻 서로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서로 갈아타는 방식으로 전체적으로는 전혀 늘어나거나 줄어들지도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 확인 작업의 결과 빛이나 열의 에너지, 달리는 자동차나 비행하는 비행기의 에너지, 전력, 진공의 에너지 심지어 공간 그 자체까지 각각 같은 에너지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유명한 공식 E=mc^2도 질량이 에너지의 한 형태임을 보여준 것으로 중요한 확인작업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물리학의 여명기는 연구한 결과로 에너지 보존 법칙의 정확성을 확인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에너지 보존 법칙을 믿는 것이 물리학자라는 증거처럼 되었다. 에너지 보존 법칙을 의심하는 학설을 발표하면 그는 더 이상 물리학자가 아니라고 비판받는 것이다.

그런데 1914년 이 에너지 보존 법칙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 발견되었다. 방사성 탄소원자 6C14가 질소원자 7N14로 변함과 동시에 전자 e-를 방출하는 현상이 상세히 조사되었다. 즉 6C14 → 7N14 + e-
라는 변화가 관측된 현상이다. C나 N의 좌변의 숫자는 그 원자의 양성자수, 우변의 숫자는 중성자도 합한 질량수를 가리킨다. 이 전자 e-는 β선, 현상은 'β붕괴'라고 한다. β붕괴는 나중에 중성자 n이 전자 중성미자 νe와 충돌하여 양성자와 전자로 바뀌는
n + νe → p+ + e-
(n과 νe 각각의 약 아이소스핀이 변환되고 p+ 와 e-가 된다) 현상이 그 에센스인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νe는 알려져 있지 않았고 관측도 할 수 없었다. 한편 이미 아인슈타인의 E=mc^2는 알려져 있었고 에너지 보존 법칙에서는 6C14와 7N14 각각의 질량차에 상당하는 에너지가 전자 e-의 운동에너지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런데 실험결과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전자 e-의 운동에너지는 분명히 예상보다 부족했고 게다가 실험마다 다양한 값을 나타냈던 것이다. 즉 β붕괴에서는 에너지 보존 법칙이 전혀 성립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운동량 보존 법칙도 성립되지 않았다.

이것은 15년 정도 동안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큰 논쟁이 되었다. 그 가운데 저명한 물리학자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가 마침내 '원자핵과 같은 미시세계에서는 에너지 보존 법칙과 운동량 보존 법칙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학설을 발표했다. 물리학의 큰 위기였다.

이 혼란을 수렴시킨 인물이 파울리(Wolfgang Pauli)이다. 그는 1930년 β붕괴 시에 관측할 수 없는 전기적으로 중성의 미립자가 전자 e- 와 함께 방출되는데 그것을 고려하면 에너지 보존 법칙과 운동량 보존 법칙이 성립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입자가 '반 뉴트리노'이다(β붕괴의 좌변에 이항하면 중성미자가 된다). 즉 중성미자 '발견'의 경위는 에너지 보존 법칙을 구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물리학에서는 이론의 약점을 메우는 '새 입자'를 생각하는 것을 새로운 입자를 예언했다는 식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많은 경우에는 새로운 입자는 질량이나 성질이 한정되어 있고 관측에서 그 존재를 검증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 그런데 중성미자의 경우는 파울리 자신이 관측할 수 없다고 전제를 해 버렸다. 어떤 의미에서 설명을 신에게 맡기는 것과 같으며 물리학에 있어서는 금물에 가깝다. 자연현상을 솔직하게 믿은 보어를 비난할 수 없다.

다만 운 좋게도 그 후 수많은 종류의 입자의 붕괴현상을 조사하는 동안 각각의 경우에서 중성미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편이 다양한 현상을 통일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리학에서 이론은 적용 가능한 대상이 많을수록 확실한 이론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중성미자는 단순한 협조에서 소립자물리학의 근간으로 승격했다.

그 중에서 위에서 소개한 β붕괴로 전자와 바뀌는 중성미자는 '전자 중성미자(νe)', 뮤온과 바뀌는 중성미자는 '뮤온 중성미자(νμ)' 타우와 바뀌는 중성미자는 '타우 중성미자(ντ)'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1956년에는 실험적으로 중성미자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중성미자 하나하나는 다른 물질과의 충돌확률P이 매우 작지만 P는 0이 아니다. 그 때문에 방대한 수 N개의 중성미자를 조사하면 관측할 수 있는 기대치 NP를 1에 가깝게 할 수 있다. 이것이 1995년 노벨 물리학상으로 이어진다.
 
여기까지는 중성미자들이 에너지 보존 법칙, 즉 물리학을 구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중성미자의 관측이 가능하게 되어 곧 1960년대 이후 그것과는 반대로 중성미자들이 물리학의 표준이론의 존립을 뒤흔드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것이 '태양 중성미자 문제'이다.


표준이론에서는 태양 중심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을 모두 설명할 수 있으며 그 반응률로부터 태양으로부터 방출되는 중성미자의 양도 상당히 엄격하게 계산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태양에서 지구상에 도달하는 중성미자를 관측해 보면 이론치의 약 27%밖에 관측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를 관측한 것은 미국의 천문학자였지만 당초 다른 연구자들로부터 '무언가의 실수일 것'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초기의 중성미자 관측장치였기 때문에 중성미자가 오는 방향이나 에너지 분포 등을 알 수 없었다. 한편 관측결과를 인정하면 표준이론에 대한 영향이 크다. 이런 점에서 사실상 보고 보지 않는 척을 하고 있던 것 같다.

이 상황을 바꾼 것이 당시 도쿄대학 교수였던 오시바 마사토시 씨와 토츠카 요지 씨 등이 었다. 오시바 씨 연구팀은 양성자의 붕괴를 조사하기 위해 기후현 가미오카 광산의 지하에 관측시설 카미오칸데를 건설해 1983년에 운용을 시작했다. 양성자는 존재하는 입자(정확하게는 바리온) 중에서 가장 수명이 긴 입자이지만 표준이론에서는 그 수명을 명확하게 계산할 수 없다. 이 수명을 측정할 수 있으면 표준이론의 검증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동기였다.

당시 양성자의 평균 수명 추정은 10^32년 정도로 우주의 연령이 138억 년(약 10^10 년)이기 때문에 양성자의 평균 수명은 우주연령의 10^22배(1조의 10억배, 혹은 1경의 100만배)나 길다. 그런데도 엄청난 수의 양성자 중에는 짧은 시간에 붕괴되는 것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관측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매우 낮은 붕괴확률로 인해 양성자 붕괴의 관측은 성공하지 못해 관측장치의 존재가 의심받는 상황이 될 수 있었다.

그런 배경 속에서 카미오칸데는 그 본래의 목적과는 다른 곳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카미오칸데에서 양성자 붕괴를 검출하는 원리는 기본적으로 중성미자를 검출하는 원리와 거의 동일했다. 이 때문에 토츠카 씨는 카미오칸데를 사용하여 태양 중성미자 문제를 검증하려고 생각한 것이다.


관측장치를 양성자 붕괴의 검출에서 태양 중성미자의 검출로 다시 조정하고 있던 1987년 2월 23일 대마젤란 성운에 있던 항성이 초신성 폭발을 일으켜 '초신성 1987A'로 관측되었다.

토츠카 씨에 의하면 2월 24일이 되어 해외의 연구자로부터 "혹시 초신성 1987A 유래의 뉴트리노가 관측되지 않았냐"는 문의를 받았다. 서둘러 카미오카에서 관측데이터를 기록한 자기테이프를 도쿄에 들여와 해석한 결과 초신성 1987A 유래의 중성미자가 11개 발견되었다.

카미오칸데는 초고감도의 광전자 증배관을 통형상으로 배치한 3차원의 거대 촬상 소자. 이 때문에 중성미자가 도착한 방향을 알 수 있었고 그것이 큰 마젤란 성운 방향과 일치했다. 중성미자의 에너지도 태양의 그것보다 훨씬 높았다.

이것이 계기로 카미오칸데는 중성미자의 관측장치로서의 역할이 메인이 되어 간다. 그 후 주로 태양으로부터의 중성미자 검출에 이용되었다. 미국의 초기 관측과 마찬가지로 태양 중성미자는 이론치의 약 46%만을 검출할 수 있었다. 이 공로가 2002년 오시바 씨 연구팀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세계 물리학자는 더 이상 보지 못한 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론치와 관측한 값이 2~3배도 어긋나 있는 것은 단순한 오차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론치의 기초가 된 표준이론은 다른 많은 실험 사실과 모순되지 않으며 반석이 너무 많아 수정 자체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연구자는 태양 중성미자 문제를 표준이론의 정확성을 뒤흔드는 것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이 결과 1990년대 전반은 어떻게든 이 건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 찾기 혹은 기존 이론의 '실수 찾기'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토츠카 씨는 1990년 강연에서 “초기에는 태양 중심의 온도가 이론보다 낮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온도를 낮추면 더 실험값과 맞지 않게 된다. 중성미자의 이론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당시 견해를 밝혔다.

그 밖에도 태양중심부의 핵융합을 설명하는 이론에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는 연구자도 있고 중력상수 G의 값이 실은 시간에 따라 강해지거나 약해지는 식으로 진동하고 있다는 중력상수 진동설을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었다. G가 다르면 태양중심부에서의 중력의 강도가 바뀌고 결과적으로 핵융합의 반응속도가 바뀌고 중성미자가 적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력상수 진동설은 다른 부분에서 관측사실과 크게 모순되어 사라졌다.

대신 대두된 것이 '뉴트리노 진동설'이다. 이 설은 3종류의 중성미자(νe, νμ, ντ)가 실은 시간이 진행됨에 따라 서로 바뀐다는 가설이다. 태양 중심부에서 발생하는 것은 νe 이지만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일부가 νμ나 ντ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고 νe, νμ, ντ에 질량 차이가 있을 때 발생한다. 이론으로서는 수십 년 전부터 있었지만 중성미자는 관측이 쉽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검증할 수 없어 방치되고 있었다.

그 중성미자 진동설은 태양 중성미자 문제 덕분에 숨을 트였다. 향기라고도 불리는 중성미자의 종류가 다르면 관측할 수 있는 중성미자의 에너지도 달라진다. 카미오칸데 등의 관측장치에서는 어느 에너지 이상의 중성미자 밖에 관측할 수 없고 거기에서 벗어나면 '없다'가 되어 버린다고 생각되었다. 이 때문에 보다 낮은 에너지의 중성미자를 관측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건설된 것이 카미오칸데의 수조용량을 약 16배로 확대한 슈퍼카미오칸데였다.

1996년에 가동한 슈퍼 카미오칸데는 2년 후에 종래의 νe에 더해 νμ로 보이는 중성미자를 관측했다. 이를 토츠카 씨와 당시 도쿄대학 우주선연구소 조교수였던 카지타 타카노리 씨가 주도했다.

그리고 2001년에는 캐나다의 Sudbury Neutrino Observatory(SNO)에 건설된 중성미자 관측장치가 νe, νμ, ντ 모두를 관측했다. 이것들을 모두 합쳐 보면 당초의 태양 중성미자의 이론치와 일치했다. 즉 태양 중성미자 문제는 중성미자 진동설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고 이번 카지타 씨와 SNO의 McDonald 씨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중성미자의 진동이 확인됨에 따라 표준이론의 수정으로 이어졌다.

현재 카미오카 광산의 지하에서는 용량이 슈퍼 카미오칸데의 20배가 되는 하이퍼 카미오칸데의 건설이 2025년의 가동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주목적은 원래 카미오칸데의 목적이었던 양성자 붕괴의 검출이다.

출처 참조 번역
- Wikipedia
- ニュートリノとは何か
https://xtech.nikkei.com/dm/atcl/column/15/198610/100800021/

Posted by 말총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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