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는 대량 발생하면 대륙을 이동하면서 농작물을 닥치는대로 먹어치워 인간사회에 기근을 일으킵니다. 구약성서에서 고대 이집트를 강타한 10가지 재앙 중 하나로 꼽을 만큼, 고대부터 인간을 괴롭혀 온 메뚜기의 대량 발생을 유발하는 물질을 특정했다고 연구진은 보고하고 있습니다.

4-Vinylanisole is an aggregation pheromone in locusts | Nature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0-2610-4


평상시의 메뚜기는 무리를 이루지 않고 생활하는 '고독상' 곤충입니다. 그러나 세대교체를 반복하는 도중에 '군생상'으로 태어난 메뚜기는 무리행동을 할 수 있게 되어, 지금까지 먹지 않던 식물도 먹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고독상 메뚜기도 무리에 가세하기 때문에, 무리의 규모는 수억 마리 또는 수십억 마리 수준까지 성장합니다. 엄청난 수의 메뚜기가 이동하면서, 통과하는 농업 지역의 농작물을 모두 먹어치워 버리는 재난을 일으킵니다.

고독상 메뚜기와 군생상 메뚜기는 습성이 다를 뿐 아니라 몸의 구조도 다릅니다. 코라조닌이라는 호르몬이 상변이의 원인물질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만, 어떻게 상변이가 일어나는 것인지, 그리고 왜 거대한 무리를 이루는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by CSIRO


중국과학원 동물연구소의 연구팀은 메뚜기를 물리칠 수 있는 화학물질이 존재하는 챔버와 존재하지 않는 챔버에 메뚜기를 넣고 관찰했습니다. 실험에서는 살충제에 사용되는 페닐아세토 니트릴은 메뚜기 격퇴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동시에 4-비닐아니솔(4VA)이라는 물질이 고독상 메뚜기를 무리짓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판명났다고 합니다.

연구팀에 따르면, 메뚜기의 개체수 밀도가 증가함에 따라, 메뚜기에 의한 4VA의 생산량이 증가하는 것을 발견. 또한 여러 고독상 메뚜기를 하나의 챔버에 갇아, 강제로 무리짓게 만들어도 4VA의 방출이 유발될 수 있다는 사실도 판명났습니다.

연구팀은 접착성 판을 2종류 준비하여, 한쪽에는 4VA을 스며들게 하고 다른 하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로 옥외에 배치했습니다. 그 후, 야외에서 메뚜기를 날린 결과, 아무것도 하지 않은 판에는 평균적으로 메뚜기가 3마리 붙는 것에 반해, 4VA을 도포한 판에는 평균 26마리의 메뚜기가 붙었다고 합니다. 다른 화학물질이 부유하는 환경에서 동일한 실험을 해도, 마찬가지로 4VA을 도포한 판으로 메뚜기가 많이 붙었다고 합니다. 즉, 4VA은 메뚜기를 무리짓게 만드는 유인 물질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연구팀은 메뚜기의 감각기관 중 4VA에 반응하는 부분을 특정하여 수용체를 검사했습니다. 그리고 게놈편집 기술인 CRISPR를 이용하여 4VA 수용체의 발현 유전자를 메뚜기에서 지운 결과, 유전자 편집된 메뚜기는 무리를 형성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4VA 수용체의 발현을 억제하면 메뚜기의 무리 형성도 억제할 수 있는 것으로, 연구팀은 유전자 편집 메뚜기를 이용하여 메뚜기 떼에 대처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수용체의 구조를 연구하여 4VA의 수용을 방해하는 화학물질을 설계할 수 있는 가능성도 시사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말총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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