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북동부에 흐르는 토렌제강의 유역에서 수 킬로미터에 걸친 대규모 유적이 1996년에 발굴되었습니다. 이 유적은 기원전 1200년경에 있었던 큰 전쟁의 흔적이라고 보여지고 있습니다. 이 3000년 전 전장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 과학 잡지 Science가 정리합니다.
Slaughter at the bridge : Uncovering a colossal Bronze Age battle | Science | AAAS
https://www.sciencemag.org/news/2016/03/slaughter-bridge-uncovering-colossal-bronze-age-battle
토렌제강 유역은 유럽 최대의 옛 전쟁터로 알려져 있으며, 청동 무기 외에 나무와 부싯돌, 화살 그리고 대량의 유골이 발굴되었습니다. 이 유역에서 전쟁이 있었던 것은 약 3200년 전으로, 돌 대신 청동을 무기와 도구로 이용하고 있던 청동기 시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투에서 죽은자는 그대로 강이나 연못에 방치되고 있었지만, 일부는 적에 의해 귀중품을 약탈당해 근처에 있는 늪에 시체가 던져진 흔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시체는 늪에 가라앉아, 토렌제강 유역에서의 장렬한 전쟁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1996년 아마추어 고고학자가 토렌제강 유역의 계곡에서 1개의 상완골이 튀어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발견된 뼈에는 플린트 제질의 화살이 박혀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발견된 상완골과 화살
고고학자들은 추가로 발굴을 진행하여 함몰된 두개골을 포함한 대량의 뼈, 73센티미터 정도 길이의 곤봉 등을 발견했습니다.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결과, 기원전 1250년경의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아래의 이미지는 발굴된 두개골. 이마 부분에는 큰 함몰이 있어, 곤봉으로 구타당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발견된 두개골의 27%는 별도의 전장에서 얻은 외상을 치유한 흔적도 발견되어, 발견된 두개골의 일부는 전쟁에 종사하고 있던 전사의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후, 2009년부터 2015년까지 대규모 발굴 조사가 실시되어, 토렌제강 유역에서의 전투가 대규모 전쟁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나무 곤봉과 청동 창과 도끼, 플린트나 청동 화살촉, 청동 팔찌와 반지, 그리고 5마리 이상의 말의 뼈와 130명 이상의 뼈가 발굴되었습니다.
현지의 문화유산국의 고고학자이자 발굴 현장의 공동감독이었던 토마스터 버거 씨는 "만약 우리의 가설이 맞다면, 이 유물은 알프스 이북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전쟁은 지금까지 발견된 전쟁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규모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청동기 시대를 맞이한 시기는 지역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비교적 정교한 문명을 가지고 있던 그리스와 중동에서는 기원전 3000년경, 인더스 문명이 번성했던 인도 주변에서는 기원전 2500년경에는 이미 석기에서 청동기로 전환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럽에 청동기 문화가 전해진 시기는 조금 늦고 지역별 작은 문명에 의해 다르지만, 대략 기원전 2000년경부터라고 합니다.
1990년 이전에는 청동기 시대에 대규모 전쟁이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토렌제강 유역의 유적이 발굴되었을 당시에는 '대분묘였던 것은 아닐까'라는 설도 제창되었습니다. 그러나 뼈에 파고든 화살과 참수된 시신이 발견되었고, 법의학자의 분석에 의해 발견된 130인분의 인골 거의 모두가 20~30세의 남자로 판명되어, 과거 대규모 전쟁이 토렌제강 유역에서 일어났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발견된 뼈의 구멍을 분석한 결과, 현장에서 발견된 화살촉의 형태가 일치했다는 조사결과도 토렌제 유역에서 대규모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주요 증거가 되었습니다.
시체를 보다 세밀하게 분석하고 치아의 동위원소를 조사한 결과, 토렌제강 유역에서 싸운 전사들이 대략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이동해왔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남성의 치아에 포함된 질소 동위원소는 남성이 북유럽보다 약간 남쪽에서 재배된 기장(common millet)이 많이 포함된 식사를 했었다는 것을 나타내었다고 합니다.
발굴 프로젝트의 고고학 책임자인 데트 얀첸 씨에 따르면, 이 유적은 2016년 시점에서 전체의 10%밖에 탐색되지 않았고, 만약 전체 영역을 발굴한다면 750명 이상의 인골이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전쟁에 참가한 사람 5명 중 1명이 죽었다고 가정하면, 이 전쟁은 4000명 이상의 전사가 참가할 정도의 규모가 된다고 얀첸 씨는 주장합니다.
예테보리대학의 고고학자인 크리스찬 크리스찬센 씨는 "토렌제강 유역에서 큰 전쟁이 있었던 시기는 지중해 주변에서 발트해로 문명의 중심이 옮겨 가고 있었던 격동의 시대였습니다"라고 추측합니다. 트로이 전쟁으로 알려진, 그리스에서 번성했던 청동기 문명인 미케네 문명은 기원전 1200년경에 붕괴했다고 생각되며, 토렌제강 유역에서의 전쟁 직후, 유럽 북부에서 요새화된 마을이 늘고 있었던 점도 추측의 근거 중 하나라고 합니다.
오르후스대학의 고고학자인 엣레 반토키르데 씨는 "기원전 1200년경에는 사회와 문화의 발전이 근본적으로 변화했습니다. 토렌제강 유역의 전쟁이 유럽의 사회조직과 전쟁의 전환점이 되었을 수 있습니다"라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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