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오지만, 그 형태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역사와 기록에 이름이 남아있는 인물의 최후에서 특히 안타까운 죽음을 역사를 테마로 한 뉴스사이트 History of Yesterday가 정리했습니다.

The Five Most Ridiculous Ways People Have Died in History | by Summer | History of Yester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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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ve Most Ridiculous Ways People Have Died in History

When death changed from a tragic matter to a comedic one

historyofyesterday.com


◆ 1 : 자신의 수염에 의해 사망

독일 국경에 위치한 오스트리아의 도시, Braunau am Inn은 아돌프 히틀러의 고향으로 유명하지만, 또 한 명의 유명인사를 배출했었습니다. 바로 16세기에 Braunau am Inn의 시장을 지낸 한스 슈타잉거입니다.

by Benutzer : MM. https://de.wikipedia.org/wiki/Benutzer:M.M


슈타잉거는 뛰어난 정치 수완뿐만 아니라 길이 137cm나 되는 훌륭한 수염의 소유자였습니다. 슈타잉거의 자랑스런 수염은 평소에는 정중하게 감아 주머니에 넣어져 있었습니다만, 1567년 9월 화재가 발생했을 때 수염이 주머니에서 튀어나와 버렸습니다. 화재에 당황하던 슈타잉거는 자신의 수염에 발이 미끄러져 계단에서 넘어졌고 목이 부러진 것이 원인으로 사망했습니다.

슈타잉거의 죽음을 슬퍼했던 시민들은 슈타잉거의 장례식을 거행하기 전에 수염을 잘라 화학처리를 하여 박물관에 보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인강 옆에 지어진 박물관에는 지금도 슈타잉거의 수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by Markus Metz.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Grabstein_Hans_Steininger.jpg


◆ 2 : 예의를 갖추다 사망

튀코 브라헤는 16세기 당시로서는 매우 정확한 천문관측을 실시한 덴마크의 천문학자입니다. 브라헤의 시대에는 망원경이 아직 발명되지 않았지만, 브라헤는 항해용 도구와 자신의 눈 그리고 수학적 계산만으로 초신성을 포함한 새로운 별을 1000개 이상 발견했습니다.

튀코 브라헤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Tycho_Brahe.JPG


덴마크의 귀족으로 태어난 브라헤는 매우 예의 바른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프라하에서 개최된 연회에 참석하는 동안 요의를 느꼈지만 '중간에 자리를 뜨는 것은 매우 무례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화장실로 향하지 않았습니다. 장시간 소변을 참았던 브라헤는 집에 돌아가서도 약간의 소변밖에 나오지 않았고, 이로 인한 요독증으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 3 : 너무 웃어서 사망

크리시포스(Chrysippos)는 기원전 3세기 고대 그리스에서 활약한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로 '크리시포스가 없으면 스토아 학파도 없었다'고 평가될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현대의 프로그래밍 언어나 스프레드시트에서 당연하게 사용되고 있는 'if-then문'도 크리시포스가 만들어 낸 명제논리의 일부입니다.

크리시포스가 발전시킨 스토아 철학은 '금욕'이라는 단어의 유래이기도 하지만, 크리시포스 자신의 최후는 금욕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당나귀가 무화과를 먹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 크리시포스는 의식을 잃을 때까지 웃었고, 그 상태 그대로 73세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File:Chrysippus_of_Soli_-_Delle_Vite_de_Filosofi_di_Diogene_Laertio_1606.png


◆ 4 : 악단을 지휘하고 사망

장 밥티스트 륄리(Jean Baptiste Lully)는 이탈리아 태생의 프랑스인 음악가입니다. 작곡가로 유명했으며 바이올린과 기타 연주, 오페라와 무용 등 다채로운 재능을 뽑내던 예술의 천재였습니다. 1660년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의 궁정악장으로 임명된 륄리는 음악가로서 순탄한 인생을 살고 있었지만, 1687년 뜻하지 않은 실수가 원인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어느 날, 루이 14세를 위해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던 륄리는 실수로 지휘봉을 다리 위에 떨어뜨려 버렸습니다. 당시의 음악가는 현대의 지휘자가 휘두르는 것과 같은 가벼운 지휘봉이 아닌 금속이나 나무로 된 무거운 막대기로 땅을 두드려 음색을 취하면서 지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륄리는 큰 부상을 입게되었습니다.

륄리의 다리의 상처는 점차 악화해갔고 균이 감염되어 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만, 춤의 명수였던 륄리는 다리의 절단을 거부했습니다. 감염이 전신으로 퍼져 2개월 후인 1687년 3월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륄리가 목숨을 잃는 계기가 되었던 연주회는 아이러니하게도 루이 14세가 질병에서 회복한 것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wikipedia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aul_Mignard_-_Jean-Baptiste_Lully.jpg


◆ 5 : 자작한 알람에 의해 사망

1880년대 뉴욕에 살던 샘 워델이라는 남성은 밤이 되면 가로등을 키고 새벽에 끄는 일을 생업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보통의 알람시계로는 늦잠을 잘 것을 우려한 워델은 자기 방에 자작 알람시스템을 설치했습니다.

워델이 만든 알람시스템은 알람시계와 벽걸이 선반을 와이어로 연결하고 선반에 무게 10파운드(약 4.5kg)의 돌을 둔다는 것. 만약 알람시계가 작동하기 전에 기상하지 못하면 와이어가 당겨져 선반과 바위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큰 소리를 낸다는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자신의 방에서 파티를 열었던 워델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침대를 선반 아래로 이동시켰습니다. 그리고 파티가 끝나자 침대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선반에서 떨어진 돌이 만취한 워델의 머리를 직격. 자작 알람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여 워델은 깨어나지 못한 채 영원한 잠을 얻게 되었습니다.

 

Posted by 말총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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