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COVID-19)의 유행을 억제하기 위해서 봉쇄 조치를 취하고 있어 예전처럼 외출하지 못하는 상황에 스트레스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전 미국해군사관이며 극도로 외부 세상과 단절된 공간인 원자력 잠수함 "코네티컷"에 타고 있었던 스티브 웨이나씨가 "원자력 잠수함에 타고 있었던 당시의 추억"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Photo by Bob Smith on Unsplash


How a Nuclear Submarine Officer Learned to Live in Tight Quarters - Issue 84 : Outbreak - Nautilus 
http://nautil.us/issue/84/outbreak/how-a-nuclear-submarine-officer-learned-to-live-in- tight-quarters

 


"나는 강제 격리에 익숙해져 있다"고 말하는 웨이나씨는 20대의 많은 기간을 미국 해군의 핵잠수함 코네티컷에 승선하는 사관으로써 보냈습니다. 코네티컷의 원자로는 추진력과 전기를 공급하는 농축우라늄 연료가 수십년치 탑재되어 있어 항구에 돌아가지 않고도 장기간에 걸쳐 바다에 잠수한 채 작전하는게 가능했었습니다. 
웨이나씨가 함내에 체류한 최장 기간은 과학자팀과 동승해 북극권의 환경조사 및 고주파 음파탐지기 등의 테스트를 수행한 2개월이었다고 합니다.

2020년 3월 상순 웨이나씨는 에게해에 접한 터키의 도시 이즈미르 교외의 마을에 있는 파트너의 친정을 방문했습니다. 당초 체류 일정은 2주였지만 COVID-19의 영향으로 귀국할 수 없게 되어 버렸기 때문에 파트너와 그녀의 부모, 7마리의 고양이, 강아지와 함께 격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 땅에서 격리 생활을 강요 당하고 있는 웨이나씨는 핵잠수함에 승선하고 있던 때와 같은 정신상태로 돌아간 자신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웨이나씨는 매일 COVID-19의 정보를 확인하고 아침식사 때 다른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랜 격리 생활로 인해 마음이 지쳐간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웨이나씨는 "잠수함 장교였던 나의 경험에서 학습한 것은 "불편한 상황에서도 쾌적하다고 느낄 수 있다" 입니다"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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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나씨가 엄격한 훈련 과정을 마치고, 잠수함에 승선하는 것이 허락되고 나서도 처음 1년간은 밑바닥에서의 공부가 계속되었습니다. 잠수함의 운항을 감시하는 일이나 잠수함의 과학적인 구조의 습득에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사용했다고 웨이나씨는 회상합니다. 물 분자를 분해하여 산소를 생성하는 전기분해장치는 대부분의 경우에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잠수함에서 숨을 쉬기 위해 염소산나트륨을 이용한 화학적 산소발생기(클로레이트 캔들)를 사용하여 산소를 만들고 있었다고 합니다. 

식수와 샤워에 필요한 물은 바닷물을 증류한 것이고 위성통신의 인터넷회선 대역폭은 매우 좁은 것이었습니다. 또한 외부에서 잠수함의 통신을 탐지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특정 장소, 특정 시간 뿐이였으며 그것도 텍스트 전용 이메일만을 친구나 가족에게 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코네티컷은 거의 정차하지 않고 계속해서 운행되고 있었고 항구를 방문할 때만 예외적으로 부상하여 정박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박시는 잠수함이 파도에 흔들려 멀미하기 쉬웠다고 합니다. "잠수함에게 안정적인 장소는 파도 아래에 있기 때문에 부두에서 벗어나면 즉시 충분한 깊이까지 잠수함을 잠수시켰었다"고 웨이나씨는 회상합니다.

잠수함 내에서 승무원들은 항상 돌아가면서 수천개의 밸브 및 시스템을 시각적으로 확인하여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그 사이에 다양한 훈련과 식사, 샤워, 수면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이 주기는 24시간이 아닌 18시간이었다고 하며 잠수함 승무원은 항상 하루의 주기가 변화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웨이나씨는 2층 침대에 닿으면 바로 잠에 빠져 들곤 했었다고 합니다. 

 

by U.S. Indo-Pacific Command


대부분의 승무원은 목재와 같이 쌓인 2단 침대에 객실마다 18명이 기거하고 있었습니다. 웨이나씨는 중위로 비교적 좋은 방을 배정받았다고 합니다만 그래도 3명이 옷장보다 작은 공간에 기거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공간을 마치 수도원처럼 평온하게 유지하고 큰소리를 내며 문을 닫거나 자명종을 울리거나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일으킬 때 승무원이 작은 목소리로 직접 깨우고 있었다고 합니다. 웨이나씨는 지금도 "웨이나 중위 기상시간입니다. 중위는 야간 당번입니다,"라는 속삭임을 꿈꾸고 있다고 합니다. 

소나로 소리를 감지하고 잠수함의 위치가 들키는 것을 막기 위해 잠수함 내 침실에 한정하지 않고 큰소리를 내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정신 및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운동도 엔진룸의 러닝머신 또는 전기장치 사이에 놓인 헬스자전거를 몰래 쓸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잠수함에서의 힘든 삶 속에서 웨이나씨는 밖에서 찍은 사진을 감상하며 외부세계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종교의 수행과도 같은 생활을 잠수함에서 계속 보낸 웨이나씨는 결국 "자신을 불안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터키의 격리 생활 속에서도 요가와 러닝머신으로 운동하며 친구가 보내온 사진을 감상하며 건전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원래의 라이프 스타일을 변함없이 재개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내 속에 있는 잠수함에서의 경험은 "수면 위로 떠오를 떄 무사하다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모든 국면에 적응할 수 있다."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웨이나씨는 말합니다.

 

Posted by 말총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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