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유무죄를 판단할 때에는 정부가 만든 법률에 따라 판단하고 처벌을 가하는 것이 옳다고 인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획일적인 법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사건이나 상황에 눈을 돌려 판단하는 '결의론'이라는 생각도 존재하는데, 레이타쿠대학의 제이슨 모건 교수가 결의론적인 사고와 그 역사에 대해 설명합니다.

On Casuistry | Issue 141 | Philosophy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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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건 씨는 사람들이 소송을 '입력된 법률 정보에서 유죄 또는 무죄를 도출하는 방정식'으로 간주하는데 익숙해져 있어, 정의를 추구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잊는다고 지적합니다. 사건을 법률서적에 기술된 정확한 정의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의 관계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부정을 바로잡는 방법으로 결의론이 존재한다는 것. 결의론의 정의는 진행중인 작업으로, 흑백이 분명하게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많은 애매한 부분이 남아 있다고 모건 씨는 말합니다.

◆ 고대의 결의론적 사상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전에 일반화된 법률로 현실에서 일어난 각각의 사건을 적용하는 것은 진정한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오늘날 일반적인 법 우선적 생각에 회의적이었던 것은 스승인 플라톤이 주장한 이데아론을 거부한 것과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플라톤은 인간의 감각을 넘어선 진정한 실재로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이데아의 불완전한 닮은 모습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것이 기본적인 실재라고 주장했으며, 플라톤보다 현실에 입각한 접근 방식을 채택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집대성한 것 중 하나가 '인간이 더 우수하고 더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목적은 행복을 얻기 위해서'라는 행복주의적 생각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생을 얻은 순간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아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일상 속에서 최선의 행동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철학자들은 '윤리적인 일은 기하학적처럼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주장을 가르치는 데 고심했다고 합니다. 모건 씨는 "사람들의 생활은 도형보다 복잡하고 '공정성의 사변'과 '정의의 제곱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모든 윤리가 단순한 카테고리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by Flying Puffin. https://www.flickr.com/photos/flyingpuffin/


◆ 중앙집권화에 의한 결의론의 죽음

21세기는 미리 정해진 법률에 사건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일종의 공식 · 방정식 · 증명과 같이 정의를 도출하는 점에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예전에는 회의론적인 정의가 일반적이었다고 모건 씨는 지적합니다. 중세 초기의 세계에서는 정의와 법률이 서적 속에 있는 것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관행적으로 길러지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재판은 법률이 아니라 관습에 따라 사건을 재판하였고, 지역사회와 개인에게 최대의 이익을 가도록 결의론적 판결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영국에서 12세기경부터 정치적 중앙집권화가 시작되어 결의론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헨리 2세는 강력하고 통일된 사법제도와 재판시스템을 창설하였고 잉글랜드의 지방에까지 '왕의 평화'를 어지럽힌 사람들을 처벌하는 절차를 마련했습니다.

이 움직임에 따라 잉글랜드의 모든 곳에서 결의론이 사라졌고 지역사회에 뿌리내린 관습이나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의 양심에 근거하는 것이 아닌, 정부가 정한 법률에 의한 판결이 내려지게 되었습니다. 모건 씨는 일련의 흐름을 '악화(惡貨)가 양화( 良貨)를 구축(驅逐)한다.'로 잘 알려진 그레샴의 법칙에 비유하며, "헨리 2세의 법은 '중앙집권 국가는 정의를 구축한다'고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중앙집권 의해 국왕의 힘이 팽창하여 지역의 사람들을 '유기적인 사회구성원'이 아닌 '사적인 주권을 가진 개인'으로 간주하는 움직임도 강해졌습니다. 이에 따라 보다 상위의 주권자인 왕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법률과 형벌이 행동을 억제해야 한다는 생각도 강해졌다고 합니다.


◆ 법률이 가져온 문제

한때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을 재판한 지역의 치안판사는 관습과 선례, 상황에 따라 판결했습니다. 이 당시의 판결은 매우 개인적이고 유연성 있는 것이었지만, 헨리 2세 시대에 시작된 개혁에 의해 정부가 정한 법률의 효력이 지방에 이르게 되어 결의론적 판결은 사라졌습니다.

결의론에 근거한 판결이 사라지자 입법기관의 권위가 높아졌고 그로 인한 폐해로 모건 씨가 거론하는 것이 '노예제'입니다. 결의론에 근거한 판결이 내려지는 상황에서는 노예가 인간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 분명했기 때문에 노예제를 지지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결의론을 이용하지 않는 중앙집권 국가에서는 노예제가 법률에 따라 허용되면, 사람들은 법률에 따라 망설이지 않고 노예제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모건 씨는 "중앙집권화는 국가의 통치가 방해받지 않도록 인간성을 법률에서 퇴출하는 과정"이라며 인간을 단순한 숫자로 추상화함으로써 종이 위의 방정식으로 추락시켜, 노예제를 가능하게 했다고 지적합니다.


◆ 결의론의 현재와 전망

유럽에서 결의론은 중앙집권화에 의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17세기 예수회 선교사들 사이에서 결의론이 유행했습니다. 그러나 예수회 선교사들은 교구민의 기부금에 따라 처벌을 바꾸는 등 결의론을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운용했기 때문에 결의론 자체마저 강하게 비판받았습니다. 이는 인해 유럽에서 결의론의 지위가 추락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계화가 진행되고 다양한 문화가 뒤섞인 현대 사회에서 기존의 법률처럼 흑백을 분명하게 마련하지 않는 결의론이 유용할지도 모른다고 모건 씨는 지적합니다. 사물의 판단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결의론은 결코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닌,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방법이어야 합니다"라고 모건 씨는 말합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며 체외 수정, 뇌사 상태 환자의 연명, 안락사, 기증자로부터 장기 이식을 받는 사람의 우선순위 등 법률에서 심판할 수 없는 많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는 일부 철학자와 사상가 사이에서 결의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철학자 스티븐 툴민 씨가 "윤리에 대한 수학적 접근이 정의와는 정반대의 엄격한 형식주의를 가져왔다"고 비판하며 유연한 결의론으로의 복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모건 씨 자신도 결의론에 대해서 '법정에서 판사가 폭주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1명의 재판관에 의한 부당한 판결이 미치는 영향보다 하나의 악법이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지적하며, 입법부에 의한 정의의 독점도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합니다. 입법중심주의에서 모든 사람의 손에 자유와 정의를 되찾기 위해 '케이스 바이 케이스'의 판단을 내리는 결의론적 생각이 필요하다고 모건 씨는 말합니다.

Posted by 말총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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