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상속을 둘러싼 다툼은 일반적으로 유족 사이에 벌어지지만, 20세기 초의 캐나다에서 백만장자가 '자신의 사후 10년간 가장 많은 아이를 낳은 여성'에게 재산의 일부를 주겠다는 유언을 남겨, 현대의 가치로 환산해 80억 원에 가까운 금액을 받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아이를 낳는 「Great Stork Derby」가 개최되었습니다. Great Stork Derby가 개최된 경위와 그 결과에 대해 미국의 웹미디어 FiveThirtyEight가 정리합니다.

How A Dead Millionaire Convinced Dozens Of Women To Have As Many Babies As Possible | FiveThirty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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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A Dead Millionaire Convinced Dozens Of Women To Have As Many Babies As Possible

On Oct. 31, 1926, Charles Vance Millar, a well-known and wealthy Canadian lawyer, died at age 73. Halloween was a fitting day for him to go; Millar loved prac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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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10월 31일, 캐나다의 변호사이며 자산가인 Charles Vance Millar가 73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부양가족이나 가까운 친척이 없었던 Millar는 유언에서 '내가 남긴 유산은 내 인생이 필요 이상으로 자산을 축적했다는 어리석음의 증거입니다'라며, 일부러 무의미한 장난 같은 방법으로 유산을 증여한다고 적었다는 것.

예를 들어, Millar가 쓴 유언 중에는 '서로를 혐오하는 3명(TP Galt 씨 · JD Montgomery 씨 · James Haverson 씨)이 함께 살기'라는 조건으로 자메이카의 별장을 수여한다거나 '금주를 권하는 토론토의 성직자에게 양조장의 주식을 증여한다', '경마 반대파의 사람에게 경마클럽의 주식을 증여한다'와 같은 식으로 농담 같은 조항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주목을 모은 것이 '자신의 사후 10년간 가장 많은 자녀를 출산하고 법에 따라 등록한 토론토에 거주하는 여성에게 자신의 남은 재산을 증여한다'는 조항이었습니다.

이 조항에 할당된 자산은 Millar의 사후 10년 동안 더욱 가치가 상승하여, 최종적으로 증여가 이루어졌을 시점에는 현재의 가치로 환산해 80억 원에 가까운 금액이 되었다고 합니다. 만약 같은 수의 자녀를 출산한 여성이 여럿 존재한다면 균등하게 금액을 분배하도록 Millar는 정해두었습니다.


Millar는 '피임을 금기시해서는 안된다'는 사상의 소유자로, 많은 아이를 낳은 여성에게 유산을 준다는 레이스를 개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피임의 중요성을 호소하고 싶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Millar의 유산을 받을 조건이 널리 알려지자 지역의 신문사 등은 'Great Stork Derby'로 명명하며 경쟁을 부추겼고 이로 인해 참여하는 가족의 수는 급증했습니다.

Great Stork Derby에 참가하는 가족에게 큰 문제가 된 것은 '어떻게 10년 동안 낳는 아이의 수를 최대화할 것인가?'라는 점입니다. 선진국에서는 19세기부터 크게 출산율이 저하했고, 현재 캐나다의 합계출산율은 1.59로 되어 있습니다.

1926년 캐나다의 평균 출산율은 3.36 정도였지만, 세계공황의 영향으로 1934년에는 출산율이 '2.8'까지 떨어졌습니다. 이 하락폭은 과거의 출산율 추이의 예상보다 훨씬 큰 것이었는데, Great Stork Derby의 참가자들은 이러한 풍조를 거슬러 아이 낳기를 계속했던 것.


일반적으로 수정 후 출산까지 최소 9개월 정도 걸리기에, Millar가 사망한 날에 아이를 낳은 여성은 최대 14번의 출산이 가능합니다. 물론 인간의 몸은 그렇게 쉽게 수정과 출산을 반복할 수 없으며, 출산 후 다시 임신할 가능성은 '여성의 모유 수유 여부'나 '자궁의 회복 속도'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수유 행위는 여성의 배란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으며, '모유로 수유를 하는 것은 산후 6개월 동안 콘돔을 사용한 것과 같은 피임효과를 유발한다'는 연구결과도 존재합니다. 따라서 Great Stork Derby에 참가한 여성의 대부분은 모유수유를 하지 않았다고 추정됩니다.

또한 많은 여성은 출산 후 몇 달 동안 자궁을 쉬게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산의 가능성이 높았다고 추정됩니다. 자궁이 만전인 상태에서 이루어진 임신에서도 15% 정도가 유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여성이 임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전에 발생하는 유산을 포함하면 비율은 더 높아진다고 합니다. 이러한 요인에 의해, 캘리포니아의 불임연구자인 제인 프레드릭 씨는 보통의 여성이 10년간에 출산할 수 있는 아이의 수는 "모유수유를 하는 경우 4~5명, 모유수유를 하지 않은 경우에는 최대 7명 정도"라고 답합니다.

물론 쌍둥이나 세쌍둥이를 임신하면 1회의 출산으로 많은 아이를 낳을 수 있지만, 당시의 기록과 신문 기사 등을 보는 한, Great Stork Derby의 유력 후보들이 쌍둥이를 출산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Great Stork Derby 참가자들은 다양한 전략으로 가능한 많은 자녀를 출산하려고 시도했다고 합니다.


몇 쌍의 가족이 Millar의 재산을 얻으려고 출산에 힘썼다는지는 불분명하지만, Millar의 사후 10년이 경과한 1936년의 마감까지 토론토에서는 적어도 20개 이상의 가족이 8명 이상이라는 경이적인 숫자의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사람들은 대공황의 어두운 뉴스가 난무하는 가운데, '백만장자의 유산을 노린 출산 레이스'라는 이상한 화제에 주목했고, 신문은 출산에 힘 쓰는 후보에 대한 보도나 유언을 무효로 하려는 Millar의 먼 친척에 대해 보도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Millar의 죽음으로부터 10년이 경과하여 Great Stork Derby가 마감되었고, 각각의 가족을 대표하는 32명의 변호사가 청문회에 출석해 유산의 권리를 주장했습니다. 먼저 재판장인 윌리엄 미들턴은 10세 미만의 어린이가 8명 이하인 가족을 배제한 후 9명 이상의 자녀를 둔 6개 가족을 상대로 재판을 진행했습니다.

이 중 폴린 클라크라는 여성이 10명의 자녀를 출산했는데, 그 중 5명이 전 남편, 나머지 5명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이였습니다. 미들턴은 "유언 문서에서 '어린이'가 사용되는 경우에는 통상적으로 적출자(혼인 관계에 있는 남녀로부터 태어난 아이)를 의미한다"고 말하며 클라크의 주장을 기각했습니다. 그리고 기간 내에 11명의 자녀를 출산한 릴리안 케니도 그중 3명이 사산이었기 때문에 주장이 기각되었다고 합니다.

최종적으로, Millar의 유산은 9명의 자녀를 출산한 4개의 가족에게 분배되었습니다. 클라크와 케니는 그 후에도 유산에 대한 재판을 계속했고, 결국 현재의 가치로 환산해 2억 원 정도의 합의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Great Stork Derby에서 우승 상금을 받은 루시 팀트렉 씨는 당시 인터뷰에서 "대가족을 키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므로 피임은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에 피임관련 정보를 얻지 못했다는 것은 유감입니다. 나는 피임 지식을 환영했을 여러 가족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현재 캐나다에는 Great Stork Derby를 계기로 태어난 팀트렉 씨 일족이 살고 있으며, 팀트렉 씨의 막내 에드워드 팀트랙 씨의 아들인 케빈 팀트렉 씨는 100명 이상의 사촌이 전국에 있다고 FiveThirtyEight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했습니다.

Posted by 말총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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